정품 잉크와 비품 잉크

2005.9.17: 아래 글은 미국에 거주하는 지인이 e-mail로 보내온 것이다. 그는 미국의 모 프린터 제조사에 근무하고 있다. 이 글을 소개하는 것은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내용이 모두 옳으므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작성한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이 글 역시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발췌, 복제, 변형, 재배포 할 수 없다.

“정품 잉크와 비품 잉크에 대한 제 생각을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프린터는 단순히 프린터 ‘기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죠. 즉, 프린터라는 것은 기계적 구성 요소와 독자적인 잉크, 용지, 이렇게 삼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져서 운영되는 것입니다. 프린터가 휘발유 제조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자동차와 다른 이유입니다. 국내의 사용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프린터는 단순히 기계 그 차체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이죠. 따라서 프린터 제조사가 잉크 장사를 한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정품 잉크가 비품 잉크보다 값이 비싸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개발 과정과 제조 공정을 살펴보면 정품 잉크를 비품 잉크와 비교했을 때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치의 미세한 먼지라도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반도체 제조 공정에 적용되는 클린룸에서 잉크 제조 공정이 이루어지는 점이라든지, 잉크 카트리지가 단순히 잉크 담는 그릇이 아닌 유체역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돼 설계된 점이라든지 하는 예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품 잉크를 개발하고 만들면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소비자들이 아신다면 비품 잉크보다 순정품 잉크가 왜 비쌀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 비품 잉크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일지라도, 장기간 사용할 때 분명히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한 것입니다. 비품 잉크가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난번 한국에 들렀을 때 어느 호환 잉크를 영업하시는 분과 얘기를 나누던 중 ‘프로파일만 제대로 만들면 색상은 정품보다 더 잘나온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던 적이 있습니다. 프린터 제조사 처지에서 본다면 이런 호환 잉크 제조사들은 프린터 제조사가 애써 개발한 수고에 무임승차하는 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물론 선택은 사용자의 몫이겠지만요.

이런 생각에 많은 사용자분께서 공감보다는 반감이 많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프린터 제조사에 있으면서 지켜본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oo 프린터 사용자의 정품 소모품 사용률은 80%를 웃돕니다. 미국에서의 소모품 가격이 한국보다 싸지도 않는 데 말이죠. 잉크라는 것을 단순한 액체로서의 ‘잉크’로 생각하느냐, 어려운 개발의 과정을 거치고 ‘제대로’ 만들어진 하나의 제품으로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프린터 제조사에서 소모품을 팔 수 없다면 프린터 역시 만들지도 팔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스튜디오에서 판매하는 증명사진을 예로 들면, 그 조그만 증명사진 찍고 몇 장 뽑아 주는 데 만 원 정도를 받고 있습니다. 요즘엔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하여 판매하는 예도 상당히 많아졌죠. 만약 증명사진을 찍는 소비자가 그 조그마한 사진 찍고 몇 장 뽑는데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을 때 스튜디오 사장님들께서는 뭐라고 답하실지… 결혼식 앨범은 또 어떻게 말씀하실지… 그 가격엔 단순히 촬영과 인화의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현재 한국 사용자들의 일반적 인식으로 볼 때, 정품 잉크와 호환 잉크의 의견을 묻는다면 프린터 제조사에 안 좋은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비단 엡손뿐만 아니라 HP나 캐논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가장 큰 이유가 가격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로서의 가격을 본다면 절대 싸지 않은 가격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제품을 사용하여 훌륭하고 가치 있는 작품이 탄생되고 있습니다. 모든 소비자는 가격에 가장 민감합니다. 정품 소모품 가격이 현재보다 싸진다 해도 소비자분들은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두서없이 생각을 글로 써 보았습니다. 어디까지 제 주관적인 생각일 뿐 제가 근무하는 회사의 생각이 아님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주관적인 이러한 생각들에 제가 모르는 요소들 탓인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죠. 공감하시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충분히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가격에 있어서는 어느 제품이든지 제조사(판매자)와 소비자의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감성을 만족하게 하는 제품이 아니라면 가격에 민감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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